"망해도 글로벌" 외치던 의료 AI 스타트업, 결국 38개국 뚫었다
[연중기획-진격의 K-스타트업, 세계로!] 의료 AI 스타트업 '루닛'의 글로벌 도전기 수년간 글로벌 파트너 노크해 GE·후지필름·필립스 등과 판매 계약 성과 "결국 관건은 기술력…후배창업가들도 자기 분야서 글로벌 도전해보길"- 2022.02.23 16:32
의료용 인공지능(AI) 솔루션을 개발하는 스타트업 루닛의 공동창업가 장민홍 최고사업책임자(CBO)는 해외진출 과정을 설명하며 이같이 말했다. 루닛은 중국과 일본, 유럽 등 38개국, 480개가 넘는 의료기관에 의료 AI 솔루션을 공급하는 글로벌 스타트업이다. 지난해 매출은 100억원을 기록할 것으로 추산된다. 설립 후 안정적으로 성장해온 모습이지만 장 CBO는 "사실 매일이 전쟁통이었다"고 회고했다.
"의료산업, AI로 가장 큰 임팩트 낼 수 있다고 판단" 백승욱 의장과 장 CBO를 비롯해 카이스트 힙합동아리 선후배 6명이 루닛을 창업한 것은 2013년이다. 첫 사업아이템은 AI 이미지 인식기술로 사용자에게 옷을 추천하는 패션사업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의 소비를 바꿀 만큼 파급력은 없었다. 장 CBO는 "바로 아이템을 접었지만 사업 자체를 포기하지 않았다"며 "AI 기술에는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루닛이 새롭게 시작한 사업아이템은 AI를 통해 암을 진단하는 것이었다. 특히 환자의 신체·조직검사 결과로 질환을 판단하는 병리학에 AI 기술이 개입될 여지가 많다고 봤다. 카이스트에서 서울대 의대로 편입해 전문의로 일하던 서범석 현 대표가 합류한 것도 이때다.
쉬운 기술은 아니었다. 보수적인 의료계에서 데이터를 얻고 AI 기술을 접목시키기는 쉽지 않았다. 장 CBO는 "병원들을 찾아다니면서 정말 많이 쫓겨나기도 했다"고 말했다. 우여곡절 끝에 대한결핵협회와 함께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경희대병원, 삼성의료원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연구개발(R&D)과제를 수행하면서 솔루션을 고도화시켰다. 현 루닛의 AI 솔루션은 그렇게 완성됐다.
장민홍 루닛 공동창업가 겸 CBO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 |
미팅 후에도 난관은 이어졌다. 몇 번을 해외에 나가 신뢰를 쌓아 놓으면, 갑자기 임원이 교체돼 관계를 새로 짜야 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기술 검증도 쉽지 않았다. 요구 수준이 까다로운 것은 물론 AI 정확도가 글로벌 의료기관의 다양한 인종에게서도 동일하다는 걸 입증해야 했다. 장 CBO는 "글로벌 기업들과 파트너십을 체결하는 일은 창업 이후 가장 어려웠던 일 중 하나였다"며 "한시가 바쁜 스타트업 입장에서는 그들이 인정할 때까지 기다리는 게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글로벌 뚫어야 생존"…기술력 알아본 정부도 맞춤 지원 그러나 해외 시장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장 CBO는 "AI 기술은 경계가 없는데다 의료산업 특성상 국내 시장만 공략해서는 성장에 한계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며 "'글로벌한 폼나는 회사를 만들어보자', '망해도 글로벌 시장에 가서 망하자'는 일종의 '객기'도 있었다"고 했다.
결국 해결책은 기술력이었다. 북미영상의학회(RSNA) 등 국제 의학 및 AI 학회에 발표된 루닛의 기술과 다수의 딥러닝 대회 수상경력 등이 글로벌 기업들에 신뢰를 줬다. 2015년 GE헬스케어와 첫 미팅을 갖게 된 것도 AI 이미지 인식기술 월드컵으로 불리는 ILSVRC에 출전해 5위를 기록하면서였다. 장 CBO는 "논문으로 보여준 기술력이 파트너십으로 이어졌고 파트너들이 다시 레퍼런스가 돼 새로운 파트너들과 연결됐다"고 했다.
일찌감치 루닛의 기술력을 알아본 과기정통부도 발 벗고 나섰다. 산하기관인 본투글로벌센터를 통해 해외진출을 적극 도왔다. 해외 벤처캐피탈(VC) 투자유치부터 특허 취득, 법률 검토 등 전방위적인 지원이 이어졌다. 장 CBO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수백 페이지 짜리 영문 투자유치 계약서를 봤었다"며 "과기부와 본투글로벌센터의 지원이 없었으면 투자유치도 힘들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중국, 아랍에미리트(UAE) 등 네트워크가 없었던 국가들에 성공적으로 진출한 것도 정부 지원의 결과물이라고 설명했다.
"6년만에 해외진출 성과…글로벌 시장서 '암' 정복할 것"
장 CBO는 후배 창업가, 스타트업 재직자들을 향해 "어떤 분야든 자기 분야에서 글로벌한 도전을 해보라"고 권고했다. 경영 분야라면 글로벌 파트너십에 도전해보고, 개발자라면 깃허브 등 글로벌 플랫폼에서 오픈소스를 만들어보라는 조언이다. 그는 "작은 도전과 경험들이 해외 시장이라는 심리적 장벽을 허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루닛도 도전을 멈추지 않겠다고 했다. 장 CBO는 "기술 영역을 확장시키는 게 목표"라며 "이전까지는 AI로 암을 검진하는 데 집중해왔다면 앞으로는 약물 반응률 분석 등을 통해 치료의 영역까지 도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AI 기술로 언젠간 인류의 난제인 암을 꼭 정복하겠다"고 덧붙였다.
사진=루닛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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