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볕 아래서 흙 나르고 별 보며 벽돌 반죽…동남아 환경악당 정복

[연중기획-진격의 K스타트업, 세계로!] 벽돌 고화재 스타트업 이노CSR의 글로벌 도전기 현지 석탄가마 문제 해결해 '수백억원' 탄소배출권 수익 기대 "韓기술로 개도국 사회문제 해결하는 액셀러레이터 되겠다"
  • 2022.03.25 07:00
  • 이윤석 이노CSR 대표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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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석 이노CSR 대표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
막대한 양의 탄소를 배출하는 동남아시아의 벽돌 제조산업을 친환경 산업으로 혁신하는 기업이 있다. 특수소재인 고화재를 개발해 가마에서 1000도씨 이상의 고열로 소성(燒成·굽기)하는 작업을 생략시키면서다. 주인공은 한국의 스타트업 이노CSR이다. 이노CSR의 기술은 최근 동남아의 탄소저감 효과를 인정받으면서 국제사회의 주목을 끌고 있다.

이노CSR이 처음부터 고화재 개발기업은 아니었다. 유니세프에서 근무하던 이윤석 대표는 2008년 사회적책임(CSR) 전문 컨설팅 회사로 이노CSR을 창업했다. CSR이 사명에 들어있는 이유다. 그러나 이 대표는 사업에 만족하지 못했다. 10여년간 다양한 기업들을 컨설팅해줬지만 '내 것'은 남지 않았다는 느낌이 들어서다. 이 대표는 2018년 직접 CSR을 달성할 수 있는 사업에 도전해보기로 한다.

이 대표가 선택한 분야는 벽돌 제조 분야였다. 동남아는 아직 고온의 가마에서 구워내는 방식으로 벽돌을 제조하는데 여기서 발생하는 환경오염·노동착취 등 문제가 심각했다. 이 대표는 "벽돌공장 가마가 작동할 때 발생하는 이산화탄소와 유해물질은 전체 오염물질 발생량의 약 30%를 차지했다"며 "자동차가 발생시키는 유해물질이 15%정도인 점을 감안하면 두 배 이상의 환경오염을 유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 저임금인 아동·여성이 일하면서 발생하는 노동문제도 심각했다"고 말했다.

고화재를 사용해 굽지 않아도 벽돌을 단단하게 만들 수 있으면 해결되는 문제였다. 이미 우리나라를 비롯해 선진국은 해당 방식으로 벽돌을 제조한다. 그러나 동남아에서는 기술 부족, 높은 단가 등의 이유로 고화재 사용이 보편화되지 않았다. 이 대표는 사업을 위해 한국의 한 벽돌 고화재 공장을 인수했다. 기술은 뛰어나지만 해외사업화 여력은 없는 소공인이었다. 그렇게 이노CSR은 2019년 벽돌고화재 제조기업으로 변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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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현지의 기존방식 벽돌공장. 석탄매연과 분진 등으로 시야가 뿌옇다. /사진=이윤석 이노CSR 대표


확신했던 고화재, 네팔 갔더니 "어, 안되네?"…현지화만 6개월 걸렸다


"그런데 웬걸, 한국에서는 척척 굳던 벽돌이 네팔에선 안 굳는 거예요. 지역마다 흙 성분이 달랐던 거죠." 확신에 찼던 사업모델이지만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흙 성분이 한국과 다를 뿐 아니라, 네팔 안에서도 지역마다 달랐다. 흙에 따른 고화재 배합비를 맞추는 등 현지화 작업이 필요했다. 이 대표는 "한 6개월은 밤새도록 네팔 500여 지역의 흙을 다 채취해서 실험했다"며 "낮에는 네팔 전역에서 흙을 퍼오고, 밤마다 고무장갑을 끼고 반죽해가며 배합비를 찾았다"고 말했다. 답을 찾기 위해 한국 전문가들의 조언도 들어야 했다. 이 대표는 반년 동안 네팔만 20번을 넘게 왕복했다.

우여곡절 끝에 2019년 현지 흙에 맞는 공정을 완성했지만 또 문제가 터졌다. 코로나19(COVID-19)였다. 네팔 전역이 봉쇄되면서 사업을 진행할 수 없었다. 또 한 번의 좌절 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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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에서 벽돌 제조공정 현지화 작업 중인 이윤석 이노CSR대표 /사진=이노CSR제공
그러나 코로나19는 사업확장의 기회이기도 했다. 석탄가격과 인건비가 오르면서 고화재의 비용절감 효과가 커졌기 때문이다. 말레이시아 등 다른 국가에서도 이노CSR의 기술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6개월의 현지화 작업으로 흙에 따른 배합비를 매뉴얼화해 다른 국가 진출도 어렵지 않았다.

이노CSR은 말레이시아 진출을 위해 현지 기업과 조인트벤처를 설립했다. 조직이 작고 코로나19로 이동이 쉽지 않아 조인트벤처 설립으로 진출하는 게 유리하다고 판단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본투글로벌센터도 해외 조인트벤처 설립 지원사업으로 이노CSR을 지원했다.이 대표는 "글로벌 진출은 어떤 사업파트너를 만나냐에 따라 성패가 갈리기도 한다"며 "본투글로벌센터의 믿을 수 있는 네트워크를 활용했더니 말레이시아 진출은 차질없이 진행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탄소배출권 거래시장이 활성화된 것도 기회였다. 고화재를 통한 매출과 함께 탄소저감으로 인한 배출권 거래수익도 본격화될 수 있어서다. 이 대표는 "쓰던 석탄을 아예 안 쓰게 하니 탄소저감효과가 명확하다"며 "네팔에서 외국기업 최초로 탄소배출권(CDM) 거래 허가를 받았고 현재는 자발적 탄소배출권 시장에 등록 중"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2025년까지 연 100만톤 이상의 탄소배출권을 획득하는 게 목표다. 1월 기준 국내가격(톤당 3만5000원)으로 환산하면 350억원 규모다.


"K기술로 개도국 문제 해결하는 '녹색 기술 액셀러'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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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노CSR은 올해부터 본격적인 매출이 발생할 것으로 전망된다. 본투글로벌센터는 올해 25억원, 내년 50억원 이상의 매출을 거둘 것으로 전망했다. 이 대표는 "한 번 공정을 전환시켜 놓으면 지속적으로 매출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영업이익률도 상당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노CSR은 네팔을 시작으로 다른 개발도상국 국가에도 사업을 확장한다는 계획이다. 이 대표는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인도, 스리랑카 등도 동일한 문제를 가지고 있어 확장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사회적 효과를 본 아시아개발은행(ADB) 산하 ADB벤처스는 이미 이노CSR에 12만5000달러(1억5000만원)의 시드투자를 진행했다. 이 대표는 "탄소배출권 등록이 끝나고 매출이 가시화되면 올해 하반기부터는 기관투자 유치도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사업모델도 확장할 계획이다. 이 대표는 "장기적으로 이노CSR을 '녹색 기술 액셀러레이터'로 만들 것"이라고 했다. 기술력은 높지만 글로벌화 여력은 없는 중소기업의 친환경 기술들을 이전받아 개도국에서 안착시키는 사업을 하겠다는 설명이다. 이 대표는 "문제의식을 갖고 해외를 다니다 보면 책상 앞에서는 체감할 수 없는 다양한 문제들과 해결 기회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며 "앞으로도 직접 뛰어다니면서 국내 기술로 개도국의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스페셜리스트가 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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