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정의도 반한 국산 배터리 신병기...에너지시장 게임체인저 주목
[스타트업 어벤져스-(2)기후위기]④김부기 스탠다드에너지 대표, 세계 첫 '바나듐 이온 배터리'로 ESS시장 공략- 2021.07.25 06:57
- 김부기 스탠다드에너지 대표 /사진=홍봉진기자 honggga@
김부기 스탠다드에너지 대표 /사진=홍봉진기자 honggga@ |
차세대 배터리 개발기업인 스탠다드에너지의 김부기 대표는 "인류는 항상 에너지를 사용해야 하지만 거의 대부분 화석연료에만 의존해 탄소배출이 많다. 친환경을 위해선 에너지 시장의 변화가 가장 시급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세계 첫 '바나듐 이온 배터리' 개발…안전성·내구성 우수, 재활용도 가능
그동안 배터리 시장은 1990년대 상용화된 리튬이온 배터리가 주도해왔다. 최근 배터리 산업의 메인으로 꼽히는 2개 분야 △전기자동차용 배터리 △풍력·태양광발전 등을 저장하는 ESS(에너지저장장치)에서도 리튬이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하지만 리튬이온 배터리는 열이나 충격에 취약하다. 종종 발생하는 스마트폰·노트북·전기차 발화 사건은 모두 리튬이온 배터리가 주범으로 꼽힌다. 전해액(양극과 음극 사이에서 이온의 흐름을 돕는 매개체)에 휘발성 높은 소재가 사용된 탓이다.
만약 ESS 시설에서 폭발이나 화재가 발생하면 피해 규모는 걷잡을 수 없다. 실제로 지난 몇 년 동안 ESS 시설에서 화재가 잇따랐고, 이 같은 리스크를 떠안기 부담스러운 기업들이 투자를 꺼리면서 국내 ESS 시장은 사실상 고사 상황에 가깝다.
극강의 안전성, ESS에 특화된 배터리
기존에 바나듐을 이용한 '바나듐 레독스 흐름전지'가 있었다. 안정성은 높지만 리튬이온배터리보다 2~3배 이상 많은 공간을 차지해 큰 부피가 최대 단점으로 꼽혔다. 충전·방전 출력과 속도 등에서 효율이 낮다는 문제도 있어 상용화가 이뤄지지는 못했다. 바나듐 이온 배터리는 이런 문제를 대폭 개선했다. 아직 전기차·스마트폰용으로사용할 수준은 아니지만, 손바닥 크기 정도로 줄인 데다 원하는 용량만큼 이어 붙일 수 있는 모듈형으로 개량했다는 설명이다.
김 대표는 "리튬이온 배터리는 태생적으로 움직이는 물체에 쓰려고 만든 것이다. 고정된 곳에서 대용량 전기를 저장하는 ESS에는 효율이 높고 안전하며 오래 쓸 수 있는 친환경적 배터리가 필요하다. 각각 특화된 용도에 맞게 나눠 사용해야한다"고 했다.
그는 "ESS에서의 사고는 스마트폰 배터리 폭발과 스케일이 다르다. ESS용 배터리의 안전성은 결코 양보하거나 타협할 수 있는 요소가 아니다. 어떤 환경에서도 발화하거나 폭발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다만 김 대표는 바나듐 이온 배터리가 리튬이온 배터리와 경쟁하는 구도는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는 "육상에도 단거리·장거리 선수가 있듯이 배터리 산업에서 리튬이온은 단거리, 바나듐 이온은 장거리 선수"라고 했다.
같은 배터리 분야라고 해도 주 사용처가 다르다는 설명이다. 그는 "바나듐 이온 배터리는 철저히 ESS에 집중할 것"이라며 "ESS만 해도 전 세계에서 예상되는 수요가 크다. 시장이 작아서가 아니라 너무 커서 고민"이라고 말했다.
뛰어난 배터리 효율, 기존 설비와 호환성도 확보
안전성은 물론 뛰어난 효율이 이런 자신감을 뒷받침한다. 에너지 효율이 모든 배터리를 통틀어 가장 높은 96%로 측정된다. 충전한 전기의 96%를 사용할 수 있고 손실률은 4%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손실이 적을수록 대용량 전기를 저장하는데 유리하다.
소재부터 제품까지 모두 자체 공장을 통해 만드는 것도 강점이다. 지난 3월 본격적인 생산을 시작했으며 추가 부지를 확보해 공장 규모를 더 늘릴 예정이다. 양산 체제가 자리 잡으면 리튬이온 배터리보다 가격이 더욱 저렴해질 전망이다.
기존 설비와의 호환성도 확보해 바나듐 이온 배터리를 도입하는 기업 입장에선 부담이 적다. 김 대표는 "그동안 구축한 시스템을 크게 변경하지 않고 당장 배터리를 사용할 수 있도록 호환성을 갖춘 것도 또 하나의 장점"이라고 했다.
환경파괴 주범, 폐플라스틱도 배터리 재료로 쓴다
이어 "전기차의 경우도 리튬이온 배터리 폐기로 인환 환경오염 문제가 예상됐던 미래다. 폐기하는 것도 친환경적이어야 진짜 친환경 기술"이라며 "바나듐 이온 배터리는 처음부터 재활용을 목표로 개발했다"고 덧붙였다.
특히 환경문제의 최대 골칫거리 중 하나인 폐플라스틱까지 배터리 재료로 사용할 수 있다. 김 대표는 "바나듐 이온 배터리의 재료로 플라스틱을 재활용하는 방안에 대한 기술적인 검토를 마쳤다. 가능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배터리 개발 방향을 설정했을 때 절대 양보하지 않았던 요소가 친환경"이라며 "바나듐 이온 배터리가 탄생한 배경이 ESS였고, ESS가 탄생한 배경이 친환경이다. 배터리 산업의 앞단과 뒷단 모두 친환경적인 생태계를 완성시킬 것"이라고 했다.
새로운 에너지 시대 표준 이끈다…'에너지 평등'에도 기여
김부기 스탠다드에너지 대표 /사진=홍봉진기자 honggga@ |
스탠다드에너지의 경쟁력은 투자업계는 물론 글로벌에서도 입증됐다.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그룹 회장이 이끄는 소프트뱅크벤처스 등에서 250억원을 투자받았고, 최근 세계경제포럼(WEF) '테크놀로지 파이오니어 2021'에 선정됐다.
WEF는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유망기술을 가진 기업을 테크놀로지 파이오니어로 선정해오고 있다. 올해 에너지 분야에서는 전 세계 기업 중 스탠다드에너지 등 8곳이 뽑혔다. 에너지 분야에서 한국 기업이 선정된 것은 최초 사례다.
앞으로 WEF가 추진하는 'Net-zero Carbon City(탄소중립 도시)' 프로젝트에 참여해 글로벌 리더들과 함께 탄소 문제 해결에 나서게 된다. 김 대표는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많은 기술이 필요하다. 우리가 중요한 한 축을 만들 것"이라고 했다.
김 대표의 에너지 비전은 친환경에 그치지 않는다. '에너지 평등'까지 바라보고 있다. 그는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발전해왔던 산업에서는 석유가 특정 나라에만 있고 가격도 비싸 에너지가 불평등할 수밖에 없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기후변화 문제에 대응해도 여전히 소외된 사람들이 있다. 이 순간에도 폭염 때문에 죽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며 "에너지만 충분히 활용할 수 있다면 이를 막을 수 있다. 최소한 전기 에너지 만큼은 모두에게 평등한 세상을 만들고 싶다"고 강조했다.
배터리부터 건강보조제까지…'광물계 팔방미인' 바나듐이 뜬다
광물 바나듐 /사진=스탠다드에너지 |
광물 대다수가 1700~1800년대 발견된 것과 달리 바나듐은 1900년대 이후 발견됐다. 순수한 철을 얻기 위해 불순물을 걸러내는 과정에서 바나듐이 추출된다.
경쟁 광물인 리튬에 비해 안전한 2차 전지를 만들 수 있고 철과 섞으면 탄성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어 활용 가능성이 풍부한 '광물계의 팔방미인'으로 불린다.
중국과 러시아,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3개국이 전 세계 바나듐 매장량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최근에는 국내에서도 경기도 포천과 연천, 인천 소연평도와 볼음도, 충북 옥천, 충남 금산 등에 분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수급과 가격에 대한 불안 요소가 매우 적은 원자재로 평가된다. 리튬이온 배터리에 사용되는 리튬·코발트 등의 광물이나 석유와 달리 특정 지역에만 묻혀 있지 않아 바나듐은 지정학적 리스크가 없다.
아직 미국 정부가 관리하는 전략물자(일정량 이상의 재고 유지·관리)에도 포함되지 않았다. 바나듐은 점차 생산량이 늘고 있어 흔히 사용되는 구리, 니켈, 망간과 비슷한 수준의 수급체계를 갖추게 될 것이란 전망이다.
"5년뒤엔 120조 규모"…글로벌 ESS 배터리, 이유있는 폭풍성장
22일 ESS 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ESS 배터리 시장은 연간 44.4%의 높은 성장률(CAGR)을 기록해 올해 200억달러(약 22조원)에서 5년 뒤인 2026년에는 1060억달러(약 120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업계 관계자는 "탄소중립 사회로 변환됨에 따라 신재생에너지 공급이 늘어나고 있고 스마트 그리드 구축과 맞물려 ESS 배터리 시장이 대폭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특히 신재생에너지와 연계한 ESS 시장 규모가 가장 클 것으로 분석된다. 2030년까지 전체 발전량의 20%를 신재생에너지로 대체하는 정부의 '재생에너지 3020' 정책에 따라 태양광·풍력 등 변동성 전력을 안정적으로 수용하는 계통안정화용 ESS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가정용 ESS에 대한 관심도 늘고 있다. 정전(블랙아웃)에 대비하거나 전기요금을 절감하기 위해 가정에서 쉽게 전력을 생산할 수 있는 태양광발전과 함께 ESS가 설치된다.
국내 ESS 시장의 경우 정부가 2017년부터 전기요금 할인특례, 신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REC) 적용 등 보급지원 정책으로 시장이 성장하는 듯 보였으나 잇달아 발생한 ESS 화재사고로 인해 ESS 관련 투자가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이학성 ESS생태계육성통합협의회장은 "화재 이후 생태계 전반에 확산된 안전대책 미비에 대한 신뢰 회복, 시장 지속성장을 담보하기 위한 생태계 복원이 최우선 과제"라며 "전문성에 기반한 중소기업과의 상생협력으로 동반성장을 추구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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