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기록없어 사라지는 한식들…탈북 CEO가 되살리는 北음식

[스타트UP스토리]제시 킴 제시키친 대표 "음식으로 남북이해 높이고 사람과 사람 연결"
  • 2021.06.02 08:00
  • 제시킴 제시키친 대표 인터뷰 /사진=이기범 기자 leek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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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시킴 제시키친 대표 인터뷰 /사진=이기범 기자 leekb@
이북식 곤드레 두부밥을 대표상품으로 국내 가정간편식(HMR) 시장을 공략하고 있는 '제시키친'은 북한 양강도 혜산 출신의 제시 킴(Jessie Kim) 대표가 지난해 5월 설립한 스타트업이다.

어렸을 적부터 음식 만들기를 좋아했던 제시 킴 대표는 2014년 한국에 온 뒤 대학교와 NGO 등에서 여러 활동을 하던 중 '잃어버린 한식의 반쪽인 북한 음식을 통해 한반도 사람들을 잇겠다'는 비전을 갖고 창업을 결심했다.

예명인 '제시'는 래퍼 제시의 이름에서 따왔다. 어렸을 적 까만 피부색이 콤플렉스였던 자신과 달리 멋지게 활동하는 제시의 모습에 크게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여기에 '남북 청년이 함께 만들어가자'는 공간의 의미로 '키친'을 붙여 회사 이름이 탄생했다.

킴 대표는 "북한의 건강 간편식인 곤드레 두부밥을 주력으로 판매하면서 케이터링, 쿠킹 클래스, 강연을 진행하는 등 문화 활동도 진행하고 있다. 제시키친은 음식과 함께 문화를 소개하는 기업"이라고 했다.



"역사적 기록 없이 사라지는 음식, 문화적 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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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드레 두부밥은 바삭하게 튀긴 두부 안에 밥을 넣고 매콤한 양념을 발라 먹는 북한 국민 음식이다. 킴 대표는 기존 두부밥에 곤드레 나물을 넣고 혜산 출신의 손맛으로 만든 양념장을 더해 집에서 편하게 먹을 수 있도록 했다.

킴 대표는 "음식에는 역사와 문화가 담겨있다. 곤드레 두부밥은 몇 세대에 걸쳐 많은 사람들이 먹었지만 어느 요리책에도 담겨있지 않다. 역사적 기록이 없어 사라지는 것은 문화적 손실"이라며 구전되는 음식의 현대화·대중화 필요성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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킴 대표는 2019년 열매나눔재단이 주최한 창업 아이디어 경진대회에서 대상을 받은 뒤 아산나눔재단의 창업지원 프로그램인 아산상회에 1기로 참여해 액셀러레이팅과 투자유치 과정을 거쳐 법인설립을 했다.

사업 초기 와디즈에서 투자형 펀딩으로 5800만원의 자금을 모았고 엠와이소셜컴퍼니(MYSC)가 주도한 윤리적 투자조합 '에티컬 엑스트라마일 1호' 투자도 받았다. 북한 이탈주민(탈북민) 여성 최고경영자(CEO)가 설립한 국내 스타트업이 투자를 유치한 첫 번째 사례다.

또 서울 성동구 소셜벤처 창업 부스트업에서 1등을 차지해 3500만원, 아산나눔재단이 후속 투자유치 팀에 수여하는 '매칭그랜트'를 통해 2250만원을 지원받았다. 이로써 제시키친은 제품 생산의 외부 위탁 구조를 벗어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김예지 제시키친 이사·최고운영책임자(COO)는 "품목 확대와 대량생산으로 전환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자체 생산시설"이라며 "다음 도약을 위해 시설을 알아보고 있다. 사실상 어떤 시설로 확정할지 결정된 상황"이라고 밝혔다.

제조시설이 확보되면 생산 품목을 늘려 편의점·신선배송 등 B2B 시장에 본격 진출한다는 목표다. 킴 대표는 "9월부터 새로운 제품들이 쏟아져 나올 것"이라며 "북한의 음식뿐만 아니라 북한 음료·전통주 등 출시를 앞두고 있는 제품들이 있다"고 전했다.

특히 남한 음식과의 콜라보를 통해 새로운 메뉴를 구성할 계획이다. 킴 대표는 "우리의 미션은 잃어버린 한식의 반쪽을 소개하는 한반도 음식"이라며 "북한 음식만 내놓는 게 아니라 한국의 좋은 식단과 함께 디자인·리뉴얼해 제품화할 것"이라고 했다.

킴 대표는 북한 음식이 '비건(채식주의)' 트렌드에 적합하다는 점에서 경쟁력이 확보돼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북한은 고기가 없어 대부분 비건 음식"이라며 "그동안 들어보지 못한 음식을 많이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 대체육이 뜨지만 맛이 없다거나 거부감도 상당하다. 북한은 자연스럽게 채식메뉴가 많아 고기를 모방하지 않아도 대체육처럼 되는 메뉴들이 있다. 관련 기술특허를 갖고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오프라인 프랜차이즈, 글로벌 진출까지…음식으로 알리는 한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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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시킴 제시키친 대표 인터뷰 /사진=이기범 기자 leekb@
한국 음식과 문화유산을 알리기 위해 서울 종로에 오프라인 프랜차이즈 1호점도 만들 예정이다. 주력 메뉴는 '한반도 국수'다. 킴 대표는 "가장 잘 만들 수 있는 음식이 감자전분 국수"라며 "기술이 필요한데 이를 레시피로 만들어 프랜차이즈화 할 것"이라고 했다.

글로벌 진출도 목표다. 김예지 COO는 "킴 대표와 미국 NGO 단체에서 만난 사이로 처음부터 해외 수요를 고려해 기업을 설립했다"며 "한국 본부(HQ)를 시작으로 워싱턴·LA·뉴욕을 넘어 독일 베를린에서도 사업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사업 확장 과정에서 필요한 인력은 남북청년을 1대 1로 매칭해 채용할 계획이다. 킴 대표는 "남한사람인 김 COO와 어깨를 부딪혀가며 여기까지 왔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남북청년이 함께 일하고 어울리는 장으로 제시키친을 만들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런 플랫폼 역할을 하는 것은 큰 사회적 가치가 될 것이다. 북한 사람들이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회가 좋은 사회이고 이것이 남한 사회에도 궁극적으로 도움이 될 것"이라며 "이 과정에서 음식이 최적의 매개체"라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를 식음료(F&B) 비즈니스로 간단하게 보면 안 된다"며 "음식을 통해 한반도 사람들이 가까워지기 바라는 염원을 담았다. 음식으로 한반도 문화를 풀어내고 남북이 함께 논의하는 시작점이 되길 바라는 것이 제시키친"이라고 했다.

킴 대표는 "음식은 누구에게나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이면서 사람들이 정치·종교·인종을 떠나 서로 연결될 수 있는 다리"라며 "건강하고 맛있는 음식을 통해 한반도 사람들 사이의 이해를 높이고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연결고리가 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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